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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주민번호·주소 등 무작위로 볼 수 있어
‘통신사실 확인’과 달리 통비법 규제 안받아
전문가 “법원 허가 받고, 수사기관 제공 고지해야”
“혹시나 싶어 통신사에 조회해보니 국정원과 경찰에 내 개인정보가 제공됐던 걸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경찰과 국가정보원이 수사 등을 명분으로 이동통신사에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해 들여다본 정황이 드러나자 한 누리꾼이 ‘통신자료 제공 내역 조회 방법’을 소개하고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박병우(55)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대외협력실장은 지난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동통신사들이 경찰·국정원 등에 개인정보 자료를 제공하고 있음을 알리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민주노총 사무총국 몇 사람의 자체 조회 결과 국정원과 경찰에 이들의 통신자료를 통신사들이 제공한 내역이 있었다. 하지만 통신사는 단 한 번도 그런 사실을 가입자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면서 “테러방지법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라고 짚었다.
박 실장은 이어 “통신사에 조회해보시면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받아보실 것”이라며 “심지어 (자체 조사를 해본) 한 사람은 민중총궐기 집회 참석조차 하지 않았는데 경찰 쪽에서 조회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통신사별로 경찰이나 국정원 등에 제공한 통신자료 내역을 조회하는 방법을 기록해뒀다. 3개 통신사인 △에스케이텔레콤 △케이티(KT) △엘지유플러스(LGU+) 정보제공 내용 열람 신청 방법은 다음과 같다.
실제로 민주노총 홍보실 소속의 ㅅ씨는 자신이 이용하는 통신사인 에스케이티에 정보제공 내용 열람신청을 했다. 29일 <한겨레>가 입수한 ㅅ씨의 ‘에스케이티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서’를 보면, 국정원과 서울지방경찰청, 경기지방경찰청 등은 2015년 3월10일부터 지난달 5일까지 ㅅ씨의 통신자료를 요청했다. 요청 사유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제3항)에 따라 “법원·수사기관 등의 재판·수사·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이라고 밝혔다.
통신자료 제공 요청은 통신 이용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그리고 주소·전화번호, 가입·해약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통화내역, 위치 정보까지 확인하는 ‘통신사실 확인’과 달리 통신비밀보호보장법(통비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법원의 허가 없이 수사관서장이 이동통신사에 요청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국정원과 경찰은 ㅅ씨의 개인 정보를 16번이나 들춰봤다. ㅅ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경찰 소환 대상자도 아닌데 1차 민중총궐기 이후, 열두 차례나 무차별적으로 정보기관에 나의 개인정보가 제공됐다”며 “설마설마했지만 통신자료 제공 내역을 직접 조회해보니, 개인정보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정보기관에 공개돼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이 펴내는 <노동과 세계> 소속 사진기자인 ㅂ씨의 개인 정보도 지난해 12월 일곱 차례나 서울지방경찰청과 남대문경찰서 등이 요청해 가져갔다.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노총 홍보실 ㅇ씨의 통신자료 6건도 서울지방경찰청이 통신사에 요청해 가져간 사실이 확인됐다. 민중총궐기 집회 이후 경찰과 국정원이 수사를 이유로 통신자료 제공 요청을 마구잡이로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는 “주소·주민번호·연락처 등을 안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개인정보를 얻어가는 것”이라며 “경찰 수사에 필요하다는 명분만으로 통신사에서 개인정보를 제공 받는다면, 그 대상이 포괄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문제가 있어 법원의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간사는 “최근 휴대전화 서비스나 포털사이트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할 때도 개인 정보를 등록하는데, 범죄의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정보기관이 개인정보를 가져간다고 하면 누구든 위축되고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수사기관이 법원의 영장 없이도 가입자들의 개인정보를 가져가는데도, 정작 당사자들에게 이 사실을 통지하는 절차도 마련돼 있지 않다. 정민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얼마 전까지 이동통신사는 이용자들의 개인정보가 수사기관으로 제공되었는지 여부조차 확인해주지 않았다”며 “이용자들의 개인정보가 수사기관에 제공되었다는 사실을 통신사가 이용자에게 고지하도록 관련 법규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